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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한번 생각하기/★웰빙생활☆

할머니....고맙습니다.

by 데이비드킴 2007.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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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다시 애가 된다고 하더니 치매걸리신 우리 할머니 너무 천진난만 하게 웃으십니다.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치매 걸린후부턴 웃음이 더 많아지셨습니다. 오히려 치매로 힘들었던 기억을 잃어 버리셔서 그런것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여느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어린나이에 시집을 오셨다 합니다. 원래 할머니의 고향은 이북인데 강화로 시집을 오셔서 친정은 결혼하고 딱 한번 가보셨다 합니다. 그때도 친정 아버님이 시집갔으면 출가외인인데 여긴 뭐하러 왔냐며 바로 가라 하셔서 그 멀리까지 가서 하룻밤도 못주무시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곤 얼마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 하였고, 그이후로 다신 밟을수 없는 땅이 고향이 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하셔서 20대의 젊은 나이로 전사하셨다 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기껏 5년남짓 결혼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할아버지 참전하시어 사망하기전까지 포함해서....

 

그나마 자식은 셋을 두었는데 둘째는 전쟁통에 병에 걸려 사망했고, 저희 아버지가 막내인데, 유복자 입니다. 할머니 뱃속에 있을때 할아버지가 전사하셔서 아버지는 할아버지 얼굴도 못뵈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요즘으로 따지면 대학생들 나이때에 애들둘을 보며, 시부모님과 시누이 둘을 모시며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시누이들과 시어머니가 얼마나 괴롭히던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했었던게 기억납니다. 시아버지는 지금으로 따지면 한의사 였고, 집안도 꽤 잘살았었는데 일제시대때 토지를 헐값에 팔게되고, 그나마 있던 집도 강화에 어떤 저수지로 편입되어서 물에 잠겨 버렸다고 합니다.

 

또, 시아버지가 나중엔 중풍이 오고 노망이 들으셔서 엄청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고등어를 유난히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어떨땐 식사하시다가 계속 우셨답니다. "아버님 왜 우세요.."라고 여쭤보면 "미군들이 들어왔다는데..그놈들이 돈이 많다는데..이 고등어 다 그놈들이 사가면 어쩌냐.."며 우셨답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다가 시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서울로 오셔서 고모와 양장점도 하시고 엄청 열심히 사셨는데 워낙 가진게 없으시고 일가친척이 없던지라 집한채 살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에 할머니는 항상 일을 하셨습니다. 공사장에서도 일을 하셨고, 병원에서도 허드렛일을 하셨습니다. 그나마 연세가 많이 드신이후론 병원에서도 �겨나셔서 건물 청소도 다니시고....

 

한번도 편하게 사신적이 없으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일 그만하시고 쉬시라고 해도 "원래 일하던 사람은 쉬면 병난다고" 아프시기 전까진 한번도 쉬지 않으셨습니다.

 

언젠가 제가 초등학교때 할머니가 편찬으셔서 누워계셨는데 제게 1천원을 주시며, TV선전 나오는 샤우면 좀 사와라..해서 제가 사오고 끓여 들였습니다. 근데 끓이며 익었나 본다면서 1/2가량을 제가 먹었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게 제일 후회됩니다. 제겐 그냥 라면 이었는데, 할머니는 너무 드시고 싶었던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삼양라면 이라던지 일반보통 라면이 100원 200원 정도 할때인데 샤우면은 400원 500원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할머니는 손자인 저에겐 자주 용돈을 주면서도 당신께서 드시고 싶었던 라면하나를 마음껏 사드시지 못했습니다.

 

군대에 있을때 부터 할머니가 조금 치매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를 하고 나니 치매가 완전히 온것 같았습니다. 계속 했던 얘기 또하시고..또하시고....대학생인 저에게 고등학교는 언제 졸업하냐...대학가야지? 군대는 언제갈꺼냐....나중엔 너무 짜증이 나서 화도 냈었습니다. 그만 좀 물어보시라고....지금 생각하니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집사람이랑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결혼할 여자에요..할머니....

할머니는 제 집사람 한테도 계속 했던 얘기를 또하셨습니다. "성이 뭐라고?" "응..허가..허씨집안 양반이지.." 오히려 지금은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땐 지금보다 건강하셨으니까요..

 

할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십니다. 전문요양원이라 시설도 청결하고 복지사분들도 친절하셔서 안심이 됩니다. 복지사 분들도 이따금 제가 찾아가면 할머니가 너무 재밌으시다고 합니다. 농담을 너무 잘하셔서 복지사분들이 시간가는줄 모른다고 하십니다. 할머니의 치매가 치료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이미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언젠간 떠나시리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까지 지금처럼 웃으면서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치매로 고생하시고 힘드셨던 기억들은 모두 잊으시고, 항상 즐겁게 웃으면서 지내길 기도합니다. 할머니....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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